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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조주의 사문〔趙州四門〕'
흥국사  heungguksa@hanmail.net 2019-04-03 69

제9칙
조주의 사문〔趙州四門〕

〈垂示〉垂示云。明鏡當臺。姸醜自辨。鏌鎁在手。殺活臨時。漢去胡來。胡來漢去。死中得活。活中得死。且道到這裏。又作麽生。若無透關底眼轉身處。到這裏灼然不柰何。且道如何是透關底眼。轉身處。試擧看。

(수시)
밝은 거울이 대(臺) 위에 있으니 예쁘고 미운 모습이 저절로 분별되고, 막야(鏌鎁) 보검이 손아귀에 있으니 죽이고 살림을 때에 알맞게 한다. 한족이 떠나면 오랑캐가 오고, 오랑캐가 오면 한족이 떠나며, 죽음 곳에서 삶을 얻고 삶 가운데 죽음을 얻는다. 말해보라, 이렇게 되면 어떠한가?
만일 관문(關門)을 꿰뚫는 눈과 몸을 돌릴 곳이 없다면, 여기에 이르러선 분명 어찌할 수 없으리라. 말해보라, 무엇이 관문을 꿰뚫는 눈이며 몸을 돌리는 곳인가? 거량해보리라.

☞ 우리 몸은 사대육신 화합이며, 사대육신을 통하여 안이비설신의 작용이 있음인데, 여섯 가지 경계인 색성향미촉법이 분별을 한다. 눈은 색을 그대로 받아 들여 의식은 분별을 하고 분별이 없는 곳에서는 그대로 지나쳐 그 자취를 찾을 곳이 없다.
즉 없는 가운데 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져 자취 없음을 ‘죽음 곳에서 삶을 얻고 삶 가운데 죽음을 얻는다’라 한다. 이러한 확연한 곳을 체득하여 알 수 있다면 일체조사와 부처님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본칙)
擧。僧問趙州。如何是趙州。州云。東門西門南門北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모습입니까?”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

〈頌〉句裏呈機劈面來。爍迦羅眼絶纖埃。東西南北門相對。無限輪鎚擊不開。

(평창)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려는 것이니, 절대로 언구를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듣지 못하였는가? 조주스님이 말하기를,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라 했다.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객들이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몸에서 우러나온 말이다’고들 한다”하였다. 이는 옛사람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딱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 어느 곳에 이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버리고 격식의 바깥〔格外〕에서 참다운 이치〔眞諦〕를 알아차려, 투철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만이 용이 물을 얻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고 말할 것이다.

【☛염화미소는 마하가섭이 제척천왕의 꽃 공양 하는 가운데 부처님이 꽃을 들자 그 뜻을 알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이 안목이 열린 그 모습을 보시고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라고 인가를 하셨다. 이는 문자를 넘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것이며, 말 이전의 소식을 서로 안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지음일 진대 말과 언어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원오선사나 모든 선사는 이와 같이 된다면 법상이 필요 없지만 부득이 말을 빌려 눈을 열어주고자 한 것이다.】

오래 참구한 선덕(先德)이 이해는 했지만 꿰뚫지 못했거나, 꿰뚫었어도 분명하지 못하므로 법을 묻는〔請益〕것이다. 만약 투철하게 이해하고 나서 법을 묻는다면 요컨대 언어문자 위에서 뒹굴더라도 막힘이 없어야 한다. 오랜 동안 참구한 이가 법을 묻는 것은 도적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는 격이다. 따지고 보면 이 일은 언구상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이 일이 만일 언구상에 있다면 삼승(三乘)의 십이분교(十二分敎)인들 어찌 언구가 아니겠는가? 왜 굳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꼭 왔어야만 했을까?”라고 하였다. 분양(汾陽)스님을 열여덟 가지 물음〔十八問〕가운데 이 물음은 상대방을 시험하는 물음〔驗主門〕또는 탐색하는 물음〔探拔問〕이라 한다.
이 스님이 이런 물음을 한 것도 참으로 기특하며 만일 조주스님이 아니었다면 또한 그에게 대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스님이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하고 묻자, 조주스님은 본분(本分) 있는 선지식이므로 곧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저는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하고 묻자, 조주스님은 본분(本分) 있는 선지식이므로 곧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저는 이러한 조주를 묻지 않았다”고 하니, 조주스님은 “그대는 어떤 조주를 물었느냐?”고 되물었다. 후인들은 이를 “할 일 없는 선〔無事禪〕이 사람을 적잖이 속인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가 조주스님을 물었는데 조주스님은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저 조주성(趙州城)을 설명해주었을 뿐이다. 그대가 만일 이렇게 이해한다면 세 집밖에 안 사는 작은 마을에 사는 촌놈이라도 불법을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불법을 파멸할 뿐이다. 마치 물고기의 눈알을 구슬에 비하는 것처럼, 닮기는 닮았겠지만 같지는 않다.

【☛본칙에서 ‘어떤 것이 조주의 모습입니까’의 물음에 ‘동문․서문․남문․북문이다’라고 한 것에 묻은 이가 알지 못하여 ‘조주성’이라고 판단하여 그 대답을 만들어 낸다면 그르쳤다는 것이다.
이는 동서남북은 사람이 만든 것이며, 통행의 통제를 위하여 만들어낸 인위적이 관문인 것이다. 그러면 조주의 참뜻은 조주라는 이름도 또한 이름이지 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설령 현재 조주의 행을 보고 동서남북이 사방으로 열려있고, 닫고 함에 규칙이 있다고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도 또한 그르쳤다고 하는 것이다.
그 참모습은 언어나 형식에 있지 않고 본래의 참으로 자취 없는 그 자리가 조주이니 그 본래의 모습은 보여줄 수 가 없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 참 보습을 보는 것이 조주인 것이다.】

조주스님이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이 마치 금강왕 보검 같아서 머뭇거리면 당장에 그대의 머리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언제나 대뜸 그 자리에서 그의 눈알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 스님이 감히 호랑이 수염을 만지며 물음을 던지니, 이는 마치 괜스레 없는 일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허나 구절 속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을 어찌하랴. 그가 이미 문제의 핵심을 드러냈으므로 조주스님도 그의 물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솜씨를 드러내어 답한 것이지, 그가 괜히 일부러 이처럼 한 것은 아니다. 확철히 깨친 사람이었으므로 자연히 딱 맞추니, 마치 (일부러) 안배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듣지 못했느냐? 어느 외도(外道)가 손아귀에 참새를 감추고서 세존께 “말씀해 보십시오. 제 손에 있는 참새는 죽었겠습니까? 살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세존께서 드디어 문지방에 올라서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말해보라, 내가 나가겠느냐, 들어오겠느냐?” (어떤 책에는 세존께서 주먹을 불끈 쥐어 들고서 손을 펴겠느냐 쥐겠느냐고 하였다고 씌어 있다) 외도는 말을 못하고 예배를 하였다. 이 이야기는 곧 이 공안과 같다.
옛사람은 원래 혈맥이 막히지 않아서 “물음은 답에 있으며 답은 물음에 있다”고 했다. 설두스님은 이처럼 투철히 알아차려 대뜸 이르기를 “어구 속에 기연을 드러내어 그대로 치고 들어왔다”라고 하였다. “어구 속에 기연을 드러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잇는 듯하다. 즉 사람〔人〕을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경계〔境〕를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조주스님은 한 실오라기만큼도 까딱하지 않고 곧 그에게 “동에는 동문, 서에는 서문, 남에는 남문, 북에는 북문”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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