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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길 (2019년 3월7일 초하루 법회)
흥국사  heungguksa@hanmail.net 2019-03-10 21

2019년 3월7일 초하루 법회

자유인의 길

발 없는 발로
광나루에서 겨울을 나신 스님께서는 봄기운이 감돌자 바로 그곳을 떠나셨다. 스님의 육신은 모래톱 고행으로 아예 걸어다니는 미이라처럼 변해 있었다. 그전에도 이미 동상에 걸릴 만한 살 한 점도 없는 몸이셨지만 모래톱의 겨울은 그나마 스님의 혈과 육을 완전히 메말려 놓았다. 오로지 형형한 눈빛 만이 살아 있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스님의 안광은 강변의 겨울밤에 유독히도 빛나는 별빛처럼 그렇게 보였다.

스님께서는 산줄기를 딸 동쪽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스님께서 그때를 회고하셨다. “그냥 묵묵히 걷다 보면 날씨가 궂을 때라도 상관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산등성이 골짜기 어디를 가도, 길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았다. 길을 잃어도 그만이라, 정처가 없으니 길이다, 아니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 가 보아야 항아리 안인 것을 이리 가면 어떻고 저리 가면 어떻겠는가 할 뿐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주위의 모든 것이 나를 주시하고 지켜 주는지라 구태여 내가 나를 돕는다 할 것도 없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때 생풀을 씹어 연명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되셨다. 무심중에 동쪽으로 나아가는 산길은 완전한 산사람의 생활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서낭당에 꽂아둔 마른 명태가 성찬이 되기도 했고 이름 모를 열매와 뿌리가 주식이 되어 목숨을 이어 주었다. 그러나 마침내 풀뿌리조차 구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스님께서는 마치 초식 동물이 그러하듯 생풀을 씹어 자셨다. 스님께서 죽지 않을 만큼의 먹거리를 제공해 주던 섭리가 어느 순간 시험을 걸어온 셈이었다.

스님께서는 그것이 먹을 수 있는 독초인지 약초인지를 알 수도 없는 처지에서 무심코 풀을 뜯어 입에 넣으셨다. 스님께서는 거기서 오히려 향긋한 풍미를 느끼셨다. 그리고 아무런 뒤탈이 없었다. 초식 동물의 주식이 어느 날 스님의 주식이나 진배없이 되어 버린 것이다. 스님께서는 이 일을 두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법반이요 법유임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라고 술회하셨다. 한 생명을 이유 없이 버리지 않는 법리는 이처럼 명증했던 것이다.

어느 때 스님께서 마을을 피해 들판을 가로지르시다가 기력이 쇠잔하여 논두렁에 쓰러져 혼절하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을 나왔다가 스님을 보고는 시신일 줄 알고 거적을 덮어 놓았다. 스님께서 얼마 후 깨어나셨는데 그 거적 무게를 이기지 못해 오랜 시간 애를 쓰셔야 했다.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그때 손발을 꼼짝할 수도 없어 너댓 시간을 그대로 누워 있었는데 홀연히 한생각이 나기를, 이 거적대기 한 장으로 삼천 대천 세계를 다 덮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돌아다녔던가 싶어졌다. 그러고는 일어서는데 ‘백련으로 가리라. 백련사로 가리라.’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백련사가 어디쯤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백련’ 이란 말이 생각난 것이다. 그러고는 그냥 걸었다.”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산중으로 다닐 때 하늘을 쳐다보며 ‘당신들이시여, 그 마음을 한마음으로 몰아서 볼 때에 이 못난 것이 이렇게 걷는데 이토록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고 호소할 적이 많았다. 그것은 그 옛날 구도자들이 목숨을 던져 가며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인도로 걷던 일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그 길을 따르고 걸었으니 실은 원망할 것도 어렵다 할 것도 즐겁다 할 것도 없었지만 자기 몸들을 초개같이 버리며 묵묵히 걸어온 그 마음을, 그 뜻을 새겨 볼 때에 역대 조사님들과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던 것이다.”

백련사로 향하는 도중에 스님께서는 두 번이나 경찰에 연행되는 쓰라린 고초를 당하셨다. 당시는 깊은 산중을 근거로 가끔 공비 잔당이 출몰하던 때였으므로 아무런 증명서 한 장 없는 스님의 경우는 공비로 오해받기가 십상이었다. 한번은 도민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 잡혀 가죽 혁대로 얻어 맞는 문초를 당하셨는데 사흘째 접어든 날 취조 형사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는 그대로 걸어 나오셨다.

또 한번은 공비들이 지서를 습격해서 방화하는 바람에 인근 산속을 뒤지는 수색 작전에 걸려 심한 고문을 당하시다 나흘 만에 풀려 나오신 일도 있었다.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손가락 사이에 대나무를 끼워 넣어 비트는 고문도 당해 보았는데 그래도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취조 형사가 나를 다지는 자성 부처로 보여 오히려 감사한 생각에 웃어넘겼다.”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무작정 걸어가면서 심심하면 시도 읊어 보고 새들하고 노래도 불러 보고 이름 모를 초목들과 대화도 나누고, 또 어떤 때는 그냥 창공을 훨훨 날아도 보고 참으로 평화로웠다. 줄창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물레방아 돌듯 돌고 도니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이 지냈던 것이다.”

백련사를 향하던 길에 눈보라가 몹시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스님께서는 해어질 대로 해어져 발가락이 삐져나온 신발 한 짝을 얼음 구덩이에 빠뜨리셨다. 스님께서는 신우대 잎을 엮어 발을 감싸고 그대로 걸으셨다. 십 리쯤 걸어갔을 때 산중에서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던 나무꾼 일행과 마주치셨다. 그들은 스님의 딱한 몰골을 보고는 신발 한 켤레를 내주었다. 스님께서는 그 손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다.

수년이었다. 스님께서는 남한산성을 지나 경기도 이천을 거쳐서 강원도 영월 쪽을 다 밟고서는 마침내 인연 따라 충북 제천의 백련사에 당도하시기까지 수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그 수년은 지나온 세월보다 더 혹독한 고행의 길이 되었다. 스님의 내면은 선정 삼매에서 오는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색신으로 겪는 일들은 이루 필설로 다 언급하기 어려운 형극의 길이었다.

나중에 스님의 수행담을 엮고자 했던 어떤 분은 이때를 설산 고행에 비견할 만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경허스님 오도송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하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로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로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 세계가 나의 집인 줄 깨달았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경허스님 행장
1849년 8월 24일 전북 전주 자동리에서 송두옥과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57년 9세 때 부친이 작고하자 청계사에서 계허스님을 은사로 2년의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았다. 14세 때 청계사에서 유학자 박처사에게 문자를 배웠는데 그의 총기에 박처사는 놀라며 탄복했다고 한다.

계룡산 동학사 만화강백(萬化講伯)에게 불교경론과 불교의 일대시교(一代時敎), 유서와 노장 등 제자백가를 모두 섭렵하여 23세의 나이에 동학사 강원의 강백이 되어 전국에서 모여든 학인들을 가르쳤다.

31세 때 옛 스승 계허스님을 찾아 가던 중, 호열자 돌림병이 유행하는 마을에서 밤새도록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이치를 문자와 경구에만 매달렸지 진면목을 보지 못함을 깨달았다. 동학사로 돌아와 강원을 폐쇄하고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목 밑에는 송곳을 놓아 졸음을 쫓으며 ‘노사미거 마사도래’의 화두로 용맹정진 했다.

석 달째 되던 날, 제자 원규가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말의 뜻을 묻자, 그 순간 미혹과 의혹이 한꺼번에 사라져 31세 때 모든 의심이 풀리면서 오도(悟道)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법명을 ‘깨우친 소’라는 뜻에서 성우(惺牛)라 하고 ‘맑은 빈거울’ 이라는 뜻으로 법호를 경허(鏡虛)라 했다.

연암산 천장암으로 옮겨 얼굴에 탈을 쓰고, 송곳을 턱 밑에 받쳐놓고 좌선을 계속하다, 1886년 6년 동안의 보임을 마치고 무애행에 나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해탈적 자유는 집착을 벗어나 때로는 바람같이 떠도는가 하면 때로는 구름같은 자적이 있었다.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는 계율에도 속박을 받지 않고 이미 그것마저 초탈한 법신의 경지였다. 낡은 윤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행적으로 산중에서 은거하는 독각선(獨覺禪)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려했다. 설법이나 대화,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했고, 문자의 표현이나 특이한 행동까지도 선으로 겨냥된 방편이었다. 경허선사의 노력으로 선풍은 일신했고, 전국에 선원이 생겨났으며 많은 선사들이 배출됐다. 제자들 중에는 만공, 혜월, 수월, 한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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